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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낙오한 한 남자의 독백 - 자유와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다

가산면 2024. 12. 1. 01:21

사진: Unsplash 의 Lucas Beck

인생에 낙오한 한 남자의 독백

 

인생이... 참 알다가도 모르겠네. 젊었을 땐 내가 인생 부럽지 않게 사는 줄 알았어. 잘생겼다, 인기 많다, 이런 소리 들으며 바람 잘 날 없이 살았지. 꼬붕하고 예쁜 여자애들이 따라다녔어. 허, 공부? 안 해도 장학금 타면서 그럭저럭 지냈잖아.

근데 돌이켜보니 그게 다 뭐였냐 싶어. 겉치레에 불과했던 거지. 부잣집 도련님하고 어울리면서, 사치스런 유흥에 빠져 지냈어. 진짜 값진 게 뭔지도 모르고 살았네. 우정, 사랑 같은 거 말이야.

아이고... 사랑. 웃기지 마라. 난 사랑 같은 거 할 줄도, 받아본 적도 없는 놈이야. 여자들 마음 갖고 놀기 바빴지. 진심으로 사랑한 여자들한테 얼마나 속물처럼 구는지... 결혼하자는 여자는 내가 차버렸어. 자유가 좋다면서. 아... 지금 생각하면 최악이었어.

나 같은 놈들 보면, 심리학자들이 하는 말 딱 맞아떨어지더라고. 애착이론인가 뭔가 하는 거. 어릴 적에 부모랑 애착 잘 형성 못 하면, 컸을 때 대인관계도 망가진다나봐. 사람이랑 깊은 정 나누는 게 두려워진다고. 우리 부모님도 나한테 그랬으니... 내가 이 꼴이 된 거 같네.

허허... 정상적인 연애 한 번 못 해보고, 늦도록 혼자 살았어. 친구들은 결혼하고, 자식 낳고, 가정도 꾸리는데... 난 멍청하게 서른 중반까지 혼자 뒹굴었지. 가끔 사귀는 여자는 있어도, 얕은 관계로 흐지부지됐어.

근데 말이야, 솔직히 속으론 늘 불안하고 외로웠어. 겉으론 태연한 척했지만. "난 자유가 좋아. 결혼 안 하는 게 행복해." 자기 합리화에 급급했던 거야. 허구한 날 떠들어댔는데... 바보 같은 자존심 하나 챙긴다고 정작 소중한 건 다 놓쳤어.

그렇게 세월만 흘러 이렇게 추레한 노총각이 되어버렸네. 혼자만의 쓸쓸함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부모님은 세상 뜨시고, 남은 가족들 하고도 멀어졌어. 조카들 낯도 가물가물하다니까. 진짜 처량하기 짝이 없는 인생이야.

매일같이 술이나 마시면서 살아왔는데... 이젠 건강마저 망가져버렸어. 몸도 마음도 다 피폐해졌다고. 이 누추한 단칸방에서 담배 연기에 절어가며 살아. 휴우, 내 꼴이 우스워 죽겠네. 복지사 왔다 가도 나 못 본 척하고 가버리더라.

옆방에선 젊은 남녀가 한창 좋을 때라... 밤마다 소리가 새어나와. 가슴이 섬뜩 내려앉아. 그 젊음이, 활기차고 정열적인 게 너무 부럽고 질투 나. 근데 내가 뭐라고. 이젠 귀 대고 엿듣는 게 낙이 되어버렸으니... 아이고, 왜 이렇게 살았는지.

에릭 에릭슨이라는 심리학자 말로는 말이야, 난 자아통합에 실패한 케이스래. '자아통합 대 절망'이 인생 후반기 발달과업이라는데... 지나온 삶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마무리하는 게 자아통합이고, 그러지 못하면 절망에 빠진다나. 내 얘기 같아, 딱.

또 로버트 워튼이라는 사람 이론에 의하면, 성인 애착 유형 중에 '거부-공포형'이 있대.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 친밀한 관계를 기피한다는 거야. 아이고, 내 인생이 바로 그 본보기구만. 어릴 때 불안정했던 애착 탓에... 한심하기 짝이 없어.

정말 후회스러워. 젊은 날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말이지... 사랑하는 여자 만나서, 따뜻한 가정도 만들고 싶다. 정 듬뿍 주고받으면서 살고 싶어. 그랬으면 이런 처참한 인생은 아니었을 텐데... 다 늦어버렸어. 이 나이에 무슨 꿈을 꾸겠냐마는.

젊은 친구들아, 내 말 좀 새겨들어. 자유에만 목매지 말고, 꼭 사랑하는 사람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가족의 힘을, 애정의 위대함을 깨달았으면 좋겠어. 꼰대 염장 같겠지만... 이게 내 간절한 소망이야. 부디 내 말로를 밟지 말고...

내 인생은 거지 같았어도, 너희한텐 교훈이 되길 바라. 내가 걸어온 길, 내가 느낀 후회가 결코 헛되지 않기를. 제발 제발 너흰 나처럼 살지 마. 이 기구한 늙은이가 너희한테 빌어도 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