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심리학

데이트 주도권 갈등, 심리학으로 풀어보는 해법

가산면 2024. 11. 26. 21:30

데이트 주도권 갈등, 심리학으로 풀어보는 해법

연인 관계에서 데이트 주도권을 놓고 빚어지는 갈등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커플 상담 전문가들에 따르면, 데이트 계획을 누가 세우는지를 두고 다투는 연인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1]. 한쪽이 지나치게 수동적이거나 우유부단하면 상대방은 불만을 품게 되고, 반대로 한쪽이 독단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려 들면 다른 한쪽은 소외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이 같은 갈등의 이면에는 단순한 성격 차이 너머의 복합적인 심리적 요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자율성에 대한 욕구, 친밀감과 독립성 사이의 긴장 관계 등 다양한 변수들이 얽혀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세 가지 심리학 이론을 토대로 데이트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의 원인을 짚어보고, 건강한 관계를 위한 해법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성 역할 이론으로 본 주도권 갈등

데이트 주도권 문제는 전통적인 성 역할 규범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회학자 탈콧 파슨스(Talcott Parsons)는 남성에게는 도구적 역할이, 여성에게는 표현적 역할이 주어진다고 보았다[2]. 이는 남성은 문제를 해결하고 목표를 성취하는 데 주력하는 반면, 여성은 타인의 감정에 귀 기울이고 관계를 조율하는 경향이 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성 역할 구분은 데이트 상황에서도 종종 무의식적으로 발현된다. 남성은 데이트를 주도하고 이끌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한편, 여성은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여성의 능동성과 선택권을 제한하고 남성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페미니스트 학자 낸시 초도로(Nancy Chodorow)는 이러한 전통적 성 역할이 양성 모두의 발달을 저해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3]. 남녀가 고정된 틀에 갇혀 자신의 개성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건강한 연인 관계를 위해서는 성별에 따른 억압적 기대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특성과 선호에 따라 주도권을 유연하게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기결정성 이론으로 본 주도권 갈등

데이트 주도권 문제는 자기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의 관점에서도 새롭게 조명해 볼 수 있다. 자기결정성 이론은 인간의 세 가지 기본 심리적 욕구, 즉 자율성(Autonomy), 유능감(Competence), 관계성(Relatedness)이 충족될 때 비로소 진정한 만족과 행복, 성장이 가능하다고 본다[4].

이 이론을 데이트 상황에 적용해 보면, 상대방이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정해버리는 통제적인 태도는 자율성의 욕구를 침해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데이트 코스나 시간, 메뉴 등을 함께 정하는 과정 자체가 개인의 선택권을 행사하고 유능감을 느끼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커플 관계에서의 자율성 지지는 관계 만족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결정성 이론을 연구한 리처드 라이언(Richard Ryan)과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는 상대방이 나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지지할수록 관계의 질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5]. 때문에 데이트 계획을 세울 때에도 상호 간의 의사를 존중하고 합의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친밀감과 자율성의 변증법

연인 관계는 친밀감에 대한 욕구와 개별성에 대한 욕구가 끊임없이 긴장 관계를 이루는 역동적 과정이기도 하다. 이른바 '관계적 변증법(Relational Dialectics Theory)'이라 불리는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이와 하나 되고 싶어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독립된 자아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모순적 열망을 지니고 있다[6].

관계적 변증법의 창시자인 레슬리 배클러(Leslie Baxter)는 친밀감-독립성, 개방성-폐쇄성, 예측 가능성-신비성 등 세 가지 핵심적 긴장 축을 제시했다[7]. 이 틀에 비추어 볼 때, 데이트 계획 과정에서도 친밀감과 자율성 사이의 역동적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다.

이를테면 한쪽이 일방적으로 모든 것을 정해버리는 것은 지나친 통제로서 상대방의 자율성을 해칠 수 있는 반면, 그렇다고 뚜렷한 계획 없이 각자 알아서 움직이자고 하는 것 또한 친밀감 형성에 장애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때로는 함께 몰두하는 '우리'의 시간을, 때로는 개인적 휴식의 시간을 적절히 배분하여 조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갈등 해결을 위한 실천적 제언

이상의 심리학적 통찰을 토대로 데이트 주도권 갈등을 예방하고 해소하기 위한 실천 방안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고정된 성 역할에 얽매이지 않고, 개개인의 특성과 선호에 따라 주도권을 유연하게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녀가 평등한 입장에서 서로 존중하며 협력하는 파트너십을 지향해야 한다.
  • 일방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의견을 물어보고 합의해 나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데이트 계획을 공동의 프로젝트로 여기고 함께 참여하는 기쁨을 느껴보자.
  • 친밀감과 자율성, 개방성과 폐쇄성 등 상반된 욕구들 사이에서 역동적 균형을 찾아가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압도하거나 억압하기보다는 서로의 욕구를 인정하고 타협점을 모색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결론

데이트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은 결국 건강하고 성숙한 사랑의 의미를 되묻는 화두이기도 하다. 단순히 누가 데이트를 이끌어 가느냐를 떠나, 연인 상호 간의 이해와 존중, 배려와 협력이 전제될 때 비로소 행복한 동행이 가능해지는 법이다.

나와 상대방 모두의 욕구와 감정을 섬세히 살피는 과정은 분명 지난하고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의 내면에 깊이 공감하려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를 성장시키고 관계를 풍요롭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데이트 주도권으로 고민하는 연인들에게 주는 한 가지 제언. 주도권 경쟁이 아닌 협력의 관점에서, 둘만의 이야기를 함께 써 내려가 보자. 사랑은 혼자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힘을 보태어 완성해 가는 것이니까. 그 길 위에서 오늘도 사랑하는 연인들의 아름다운 동행이 이어지기를.

각주

  1. Stosny, S. (2011). The Number One Cause of Relationship Problems. Psychology Today.
  2. Parsons, T., & Bales, R. F. (1956). Family Socialization and Interaction Process. Routledge.
  3. Chodorow, N. J. (1999). The Reproduction of Mothering: Psychoanalysis and the Sociology of Gender.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4. Ryan, R. M., & Deci, E. L. (2000). Self-determination theory and the facilitation of intrinsic motivation, social development, and well-being. American Psychologist, 55(1), 68-78.
  5. Deci, E. L., La Guardia, J. G., Moller, A. C., Scheiner, M. J., & Ryan, R. M. (2006). On the benefits of giving as well as receiving autonomy support: Mutuality in close friendship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32(3), 313-327.
  6. Montgomery, B. M. (1993). Relationship maintenance versus relationship change: A dialectical dilemma. Journal of Social and Personal Relationships, 10(2), 205-223.
  7. Baxter, L. A. (2004). Relationships as dialogues. Personal Relationships, 11(1), 1-22.